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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잘 듣겠습니다'
2026-08-08 209
조수영기자
  jaws0@naver.com

[전주MBC 자료]

지난달 민선 9기 출범 이후 전주시청 본청 출입구 위에 커다란 문구 하나가 걸렸습니다.


'잘 듣겠습니다!'


조지훈 시장의 시정 운영 철학을 담은 여섯 글자입니다.


불통 논란이 이어졌던 전임 시정과 달리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현장의 어려움을 살피는 소통 행정을 펼치겠다는 약속일 것입니다.



[전주MBC 자료]


하지만 많이 듣는다고 모두 '잘 듣는 것'은 아닙니다.


예부터 '귀는 무거워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다양한 의견을 듣되 쉽게 흔들리지 않고, 충분한 검토 끝에 책임 있게 판단하는 것.


행정의 신뢰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전주권 광역소각장 건립을 둘러싼 전주시 내부의 움직임은 여러 질문을 남깁니다.



■ "2030년이 온다".. 피할 수 없는 과제


전주와 김제, 완주, 임실의 생활폐기물을 처리할 신규 광역소각장 건립 사업.


총사업비만 3,353억 원에 이르는 대형 기반시설입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존 소각장은 올해로 가동 20년을 맞았습니다.


설계상 사용 연한도 다음 달이면 끝납니다.



[전주MBC 자료]


보수를 통해 당분간 운영은 가능하지만 처리 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반입된 생활폐기물은 9만2천여 톤.


하지만 실제 소각량은 7만9천여 톤에 그쳤고, 처리하지 못한 폐기물은 1만 톤을 넘었습니다.


여기에 정부는 오는 2030년부터 생활폐기물 직매립을 전면 금지합니다.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는 결국 소각해야 합니다.


새로운 소각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필수 시설입니다.



■ 이미 내렸던 결론


전주시는 그동안 신규 소각장을 재정사업 방식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결정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민간투자 방식과 사업성을 비교했고, 다른 지역 사례를 분석했으며, 수십 년간 운영하면서 발생할 시민 부담까지 함께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초기 재정부담은 크더라도, 소각장 운영 기간인 20년 전체를 놓고 보면 재정사업이 민간투자 방식보다 2천억 원 이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행정이 수년 동안 검토해 내린 공식 판단이었습니다.



■ 그런데 다시 원점으로?


민선 9기 출범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조지훈 시장은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민간투자 방식까지 포함해 공개적으로 검증해 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주MBC 자료]


조 시장은 최근 취임 한 달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민간 투자 방식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전주시의 열악한 재정 여건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수천억 원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을 현재 전주시 재정 여건에서 그대로 추진하는 것이 맞는지 다시 따져보자는 취지입니다.


새로운 시장이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는 일, 그 자체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행정 환경이 달라졌거나 기존 판단을 뒤집을 만큼 새로운 근거가 생겼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의 핵심은 다른 데 있습니다.


민간투자 방식이 새롭게 등장한 대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 새로운 제안이 아니었다


특정 민간사업자는 이미 재작년 말부터 같은 방식의 사업 제안서를 전주시에 반복 제출해 왔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업자는 박스째 담긴 제안서를 보여주며 매달 전주시에 사업을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전주시는 그동안 같은 제안을 20차례 넘게 반려했습니다.


상위 계획과 맞지 않고, 중복 투자 우려가 있으며, 장기적으로 시민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전주MBC 자료]


그렇게 배제됐던 제안이 시장이 바뀐 지 한 달 만에 다시 검증 대상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그동안 전주시 공직사회가 수년간 검토해 내린 결론은 무엇이 달라졌기에 다시 원점에서 논의해야 하는 걸까.



■ 무슨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었을까


조지훈 시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주시 공직자들의 양심과 공적 책임감을 믿습니다."


그 말에는 오랜 시간 자료를 검토하고 사업 방식을 분석했던 실무 공무원들의 판단 역시 포함될 것입니다.


물론 민간투자 방식에도 장점은 있습니다.


당장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반면 민간사업자가 제안한 BTO-a 방식은 민간이 투자하더라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익을 지자체와 함께 나누는 구조입니다.


초기 부담은 줄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민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주시는 바로 이런 점까지 검토한 끝에 재정사업을 선택했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궁금한 것은 민간 방식이냐 재정 방식이냐가 아닙니다.


왜 기존 결론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지, 도대체 누구의 이야기를,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들었던 것인지.


우리의 질문도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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