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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배우자 불륜 밝히려다”.. 범법자 되는 ‘위기의 아내들’
2022-08-27 5187
조수영기자
  jaws0@naver.com

최근 전주지방법원이 한 40대 여성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남편의 차량 조수석 수납함에 녹음기를 설치해 남편의 불륜 정황을 담으려 했던 게 문제가 된 사례입니다. 


최근 이와 비슷한 사건을 다룬 판례가 전국에서 잇따르고 있습니다.



A: 이 차는 막 검사하고 그러지 않아요?

B: 블랙박스 그래서 끄고 다니잖아.



지난 2016년 겨울, 승용차량에 앉은 남녀가 주고받은 대화내용입니다. 그저 둘만의 공간인데 이토록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누구의 감시라도 받는 듯 불편한 심기가 읽힙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불륜관계였고, 남성이 아내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상간녀와 민사소송.. 승리한 당신은 범법자?


그런데 불륜이 발각될까봐 “블랙박스 그래서 끄고 다닌다”며 단단히 대비(?)를 한 남성은 어떻게 꼬리를 밟히게 됐을까요? 꺼진 줄 알았던 블랙박스가 작동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차량에 들어가 블랙박스의 음성녹음기능을 몰래 켜둔 것입니다. 남성의 아내가 벌인 일이었습니다.


남편과 상간녀의 불륜 정황을 담기위한 은밀한 녹음작업은 4개월가량 이어졌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불륜의심에 확신을 부여한 녹음파일을 무기로 대응에 나섰습니다. 상간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죠. 결국 1심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녀는 지난해 역으로 재판에 회부되고 말았습니다.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한 원고에서 형사사건의 피고인으로 자리를 옮기며 범법자로 내몰린 것이죠. 혐의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었습니다.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는 현행법을 정면으로 어겼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세계’가 파탄이 나면서 ‘위기의 주부’가 된 사례는 더 있습니다. 지난해 9월 , 경남 창원시의 한 아파트로 들이닥친 한 여성. 본인이 살지도 않는 아파트에 찾아간 건 바람난 남편 때문입니다. 남편의 내연녀가 거기에 살고 있었던 것이죠. 공동현관문이 잠시 열린 틈을 타 현관문 앞까지 당도했고, 휴대전화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음성녹음 앱을 켠 휴대전화를 현관문에 갖다 댔습니다. 그렇게 1시간 반. 녹음파일에는 남편과 내연녀가 주고받은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 위자료·손해배상 소송하다 범법자 될라?


 

마치 첩보 영화의 주인공처럼 발각될 위험을 감수하고 비밀 캐기에 나선 건, 이번에도 내연녀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소송’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송과정에서 녹취 증거가 서로에게 공개되면서 내연녀에게 그만 형사고소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남편과 내연녀의 대화를 녹음해 대화를 엿들은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아파트 현관문 앞까지 침입한 혐의(주거침입)까지 더해지며 법정에 세워졌습니다.


이 밖에 재작년 부산에선 여성이 남편의 불륜 증거를 찾기 위해 차량 조수석에 녹음기를 부착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부부는 이혼소송 중이었고, 남편이 아내를 통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례였습니다.



■ 나에게 유리한 배우자 불륜증거가 ‘유죄 핵심증거’로?


 

분명 불륜 배우자 혹은 그 상간자와의 민사소송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제출한 녹음파일일 텐데요. 형사법정에선 오히려 자신을 옥죄는 유죄증거로 사용돼 범법자로 내몰리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그 이유는 ‘위법수집 증거 배제원칙’이 형사소송에 적용될 뿐, 민사소송엔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이 어렵지만 ‘독수독과 이론’이라고 하면 이해가 수월합니다. 이건 ‘독이 있는 나무에서 나는 열매는 곧 독이 있는 열매’라는 뜻이죠. 형법이 채택하고 있는 원리입니다. 아무리 범죄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열매)여도 그 토대를 이루는 수집과정(=나무)에 문제가 있다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반면 민사소송은 다릅니다. 민사소송법 202조의 토대가 되는 자유심증주의에 입각해 증거를 폭넓게 인정해주는 게 차이입니다. 유무죄를 다투는 형사사건과 달리, 논리와 경험에 기초해 진짜와 가짜를 가릴 뿐입니다. 그래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더라도 재판부 재량으로 증거 채택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불륜 증거로 확보한 불법 녹음파일이 손해배상과 이혼소송에선 승소에 필요한 핵심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조계에 따르면 범법자 낙인을 감수하고 증거수집에 나서는 사례는 드물다고 합니다. 불륜 배우자 또는 상간자와의 소송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녹취증거가 자신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걸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는 것인데요. 이렇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인정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 자격정지가 선고됩니다. 어떻게 방어해보더라도 벌금형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 “법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웃픈 현실’


그래도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대사처럼, 법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불륜 배우자가 불법 녹취의 피해를 호소해도, 법은 결코 불륜의 편이 아닙니다. 불법녹음 외엔 불륜을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경우, 법은 그 사정을 헤아려주기도 하는데요. 1년 정도의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하는 사례가 일반적이지만, ‘선고유예 판결’도 제법 눈에 띕니다. 유죄가 충분히 인정되지만 범행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참작해 전과자 신세를 면해주는 것이죠. 


녹취가 안 된다면 도대체 불륜 증거를 어디서,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의문은 남습니다. 사설탐정을 고용할 수야 있겠지만, 위법적인 상황이 발생할 경우 위험부담을 함께 져야 할 수 있어 이혼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도 썩 권장하고픈 방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딱히 추천할 만한 합법적이고 현실적인 채증 방법이 없다는 게 당사자들로선 답답하고 바라보는 이들에겐 ‘웃픈 현실’일 것입니다.


간통죄 위헌결정 이후 배우자의 부정행위는 공적인 수사 대상에서 사실상 ‘사적 보복 대상’이 됐습니다. 지난 2014년 대법원은 제3자가 부부 중 한사람과 부정행위를 해 부부의 공동생활을 침해하고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걸 행위를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는데요. 하지만 이런 불법행위를 잡기 위해 또 다른 불법이 강요되는 씁쓸한 현실입니다. 불륜배우자에 대한 완벽한 복수, 어디까지나 드라마 속 이야기에 불과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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