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 좋고 물 좋은 곳이었습니다.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 한동안 단 한 사람의 정원처럼 꾸며져 있었습니다. 단독주택 앞은 정자와 그네, 화초, 돌계단까지 갖춰져 있었습니다.
전북 장수군 천천면엔 지난 2021년 지어진 붉은 기와집 한 채가 있습니다. 마을과 떨어져 있고, 앞으로 물이 흐르는 외딴집입니다. 이곳은 이듬해 집주인이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며 '군수님 사저'가 됐습니다. 그 사저 앞 하천 부지를 수년간 불법 점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역 뉴스의 집중조명을 받았던 인물, 최훈식 장수군수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점용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시설물들을 잠시 치워놓는 ‘꼼수’가 동원됐고, 행정은 이를 제대로 막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군수 부인이 군정의 역점사업 인근 땅을 측근 공무원들과 함께 매입한 사실까지 드러나며, 단순한 일탈을 넘어선 '비위'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공직윤리와 견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 공공의 공간이 사적 영역으로
문제가 된 하천 부지는 약 200평 규모로, 최 군수가 점용허가 없이 장기간 불법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주민 편의용 진출입로’라는 명목으로 뒤늦게 허가가 이뤄졌습니다. 과장급 공무원에게 결재권한을 위임했다지만, 결국 최종적인 책임은 군수 본인에게 있습니다. 해석하자면 공공의 재산을 사실상 ‘셀프 허가’한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행정의 기본은 절차와 투명성입니다. 그러나 장수군의 허가 심사는 장수군수 앞에서 유독 허술해 보였습니다. 수년간 하천에 떡하니 설치돼 있던 정자와 그네의자 같은 불법 시설물이 ‘일시적으로 치워졌는가’만 따졌습니다. 이미 훼손된 하천 지반이나 조경시설은 외면했습니다. 행정의 신뢰를 무너뜨린 사실상의 봐주기였습니다.
결국 불법은 지난달 전주MBC 취재가 시작된 뒤에야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최훈식 군수는 올해 장수군에서 하천 불법점용이 적발된 1호 사례가 됐습니다.
그런데 장수군이 점용허가를 뒤늦게 했다며 변상금으로 부과한 금액은 고작 7만 8천 원. 공공의 공간이 개인의 정원으로 바뀌었는데, 행정의 반응은 징계나 자체 감사가 아니라 내야 할 요금을 안내하는 ‘서비스’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식의 유연한 행정이 반복되면 공공과 사익의 경계는 쉽게 무너집니다. 감독 기능이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순간, 행정의 원칙은 사실상 사라지게 됩니다. 장수군은 심지어 점용허가에 앞서 하천을 원상복구 해야 한다는 요건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군수 가족에 허가를 내준 것으로 드러난 상황입니다.
여느 직장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공직사회 내부에서 상급자의 이해를 견제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내부통제 장치가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인사권을 쥔 ‘윗선의 의중’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꼼수 행정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 됩니다. 불법 시설물을 잠시 치워 허가 요건을 맞춘 뒤, 허가 후 다시 복구하는 최 군수와 같은 행태가 대표적입니다. 합법을 가장한 꼼수, 그리고 눈을 감는 봐주기가 반복되는 한, 제도의 실효성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 공직윤리의 붕괴와 이해충돌의 그림자
하천에서 터진 논란은 산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장수군이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메타세쿼이아길’ 인근 야산을, 군수 부인이 측근들과 공동 매입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사업 추진 시기와 부동산 취득 시점이 겹친 데다, 공동명의자 중 두 명이 군수 곁을 지키는 비서로 근무했거나 근무 중인 '현직 공무원'이었습니다.
최 군수는 “직원이 먼저 제안해 돈만 보탰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아주 교과서적인(?) 이해충돌 사례에 해당합니다. 정책 결정권자가 관할 지역 개발지 인근 토지를, 그것도 측근과 함께 취득했다면 이는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조직적인 비위로까지 비화할 수 있습니다.
■ '지방자치 30년'이 남기는 질문
올해는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단체장들은 갈 수록 중앙정부로부터 권한을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그 권한을 견제할 장치는 여전히 중앙의 통제와 정당 공천 시스템에 묶여 있습니다.
감사원 감사나 정부, 상급 광역지자체 차원의 점검은 대부분 사후적 조치에 그칩니다. 특히 전북처럼 특정 정당이 강세인 지역에선 지방의회가 행정권력과 한 지붕 아래에 있어 제 역할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민감사 청구 역시 요건이 까다로워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이번처럼 허가권자 본인이 이해당사자인 경우, 현행 제도로는 감시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해충돌방지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족과 측근, 비서진은 제도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역 정치권에서는 “전북 정치의 일당 독주 속에 공직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최 군수가 소속된 더불어민주당이 지역에서 권력을 독점해 오고, 유권자들이 투표로 견제하지 않는 구조에서 원인을 찾은 것입니다. 실은 이조차도 그마나 지역내 제3의 정치세력(조국혁신당)이 등장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유일한 비판'입니다.
■ 무너진 신뢰, 다시 세우려면
현재까지 이번 사건은 최 군수의 “몰랐다”는식의 해명으로 수습되는 분위기입니다. 불법 점용은 허가 취소로, 이해충돌 의혹은 부동산 매각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행정의 신뢰는 무너졌습니다.
공직자가 개인의 안락을 위해 공공의 재산을 점유하고, 이해충돌을 사적 투자로 포장한다면, 주민이 지방정부를 신뢰할 이유는 없습니다. 공복의 자리는 청렴이라는 투명한 기반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 기반이 무너지는 순간, 권력은 곧 사유물이 됩니다.
지방자치의 성숙도는 반드시 예산 규모와 사업 숫자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스스로를 절제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장수군에서 불거진 이번 사안은 전북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2만여 명을 거느리는 한 군소지역 단체장의 일탈을 넘어, 지방정치 전반을 향한 경고음이기도 합니다.
공공의 이름으로 쌓아올린 권력이 사익으로 흐르지 않도록, 제도의 칼날이 한층 더 예리해져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방자치는 더 이상 ‘자치’가 아니라 ‘자기통치’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