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MBC 자료사진]
전북 곡창지대의 대표 품종인 ‘신동진벼’가 벼랑 끝에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재작년 정부가 오는 2027년부터 농민들에게 볍씨를 보급하지 않겠다는 퇴출 방침을 철회하고, 공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단순히 성난 농심을 달래기 위한 정책적 유예로만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전주MBC가 시작한 팩트체크 보도와 지난 10월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신동진 퇴출작전'을 통해 파헤치고 검증한 것은, '신동진의 소중함'이 아니라 '대한민국 농정의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그 구조는 놀라울 만큼 허술했습니다.
정부가 내세운 신동진 퇴출의 명분은 단순했습니다. 쌀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생산성이 높은 ‘다(多)수확 품종’을 줄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쌀알이 많이 나오면 퇴출하겠다는 뜻인데, 신동진벼가 그 대표 사례로 지목됐습니다. 단위면적(약 300평)당 생산량이 570kg 이상이고, 재배면적 1위라는 점이 반복적으로 강조됐습니다.
■ 팩트체크로 드러난 졸속 퇴출
하지만 재작년 전주MBC는 팩트체크를 통해 정부가 내세운 퇴출 논리를 출발점부터 조목조목 검증했습니다.
① 기준점의 출처
먼저 다수확 품종의 기준점으로 제시된 ‘570kg'. 정부는 이 수치를 마치 과학적으로 검증된 절대 기준처럼 제시했지만, 취재 결과 이 기준이 어떤 연구와 계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도 “평균 수확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원론적 설명만 있을 뿐, 구체적인 산출 근거는 없었습니다. 정책의 핵심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스스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② 신동진벼의 생산량
실제 생산량도 따져봤습니다. 정부는 신동진의 생산량이 596kg에 이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1999년 품종 등록 당시 시험 결과였습니다. 지금과는 재배 환경도, 비료를 얼만큼 뿌려야 적정한지를 나타내는 '표준 시비' 기준도 전혀 다른 시기의 데이터였습니다.
농촌진흥청이 최근 표준 재배법을 적용해 다시 시험한 결과는 달랐습니다. 신동진의 생산량이 536kg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정부가 스스로 설정한 다수확 기준인 570kg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25년 전 데이터를 근거로 퇴출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과학에 근거한 행정이라기보다,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숫자를 끼워맞춘 ‘답정너식 정책’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③ 대체 품종과의 비교
정부가 신동진 대신 심으라며 대체재로 제시한 ‘참동진’의 생산량도 함께 비교했습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실시된 시험 결과를 보면, 참동진의 생산량이 신동진보다 더 높게 나온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쌀 공급을 줄이기 위해 품종 퇴출에 매달려 있던 정부의 선택은 끝내 신동진을 향했습니다. 정책 논리의 모순을 인정하지 않은 셈입니다.
■ 검증 없이 '20년 공든 탑' 무너질 뻔..
그럼에도 정부는 과거 생산량 수치(596kg) 하나만을 근거로 '퇴출'이라는 결론을 먼저 내렸습니다. 검증은 그 다음 문제처럼 보였습니다.
신동진은 소비자 선택을 통해 브랜드로 자리 잡은 쌀입니다. 밥알이 굵고 식감이 좋아 외식업계에서도 대체가 어렵다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북 지역 농민들이 20년 넘게 공들여 쌓아 올린 결과입니다.
정부는 쌀이 남아돈다고 말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맛있는 쌀'을 원합니다. 신동진은 바로 그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이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시장의 신호를 거스르는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소위 '탁상행정'으로 비판 받기 쉬운 행태입니다.
한국처럼 쌀 농사가 발달한 이웃 나라 일본은 어떨까요? 우리나라에 신동진이 있다면, 일본에는 대표 품종 '고시히카리'가 있습니다. 개발된 지 70년이 됐습니다. 사실 고시히카리는 줄기가 길어 태풍에 쉽게 쓰러지고 병해충에도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퇴출 대신 '보완'을 선택했습니다. 재배 기술을 연구해 좋은 비료를 개발하며 단점을 극복해 왔습니다. 그 결과 고시히카리는 일본 전체 재배 면적의 30%를 차지하며 5kg 한 포대에 10만 원이 넘는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거듭났습니다. 일본 농정이 품종의 '단점'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맛의 가치'에 주목할 때, 우리 농정은 ‘쌀알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를 앞세워 20년 공든 탑인 신동진을 뿌리째 뽑으려 한 것입니다.
■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신동진 퇴출 작전'
물론 '저탄고지'가 식습관을 넘어 식생활의 대세처럼 굳어지는 현실에서 쌀 수급 조절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객관적인 데이터와 현장의 목소리, 시장의 평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정 지역의 주력 품종을 '다수확'이라는 프레임에 가둬 희생양으로 삼는 방식으로는 농업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정부의 '신동진 퇴출 작전'은 언론의 검증과 농민들의 문제 제기, 지역 농정당국과 정치권의 지속적인 철회 요구로 멈춰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년 동안 이어진 논란이 근본적인 정책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재배면적이 1등이라는 이유로 아이러니하게 축출 대상이 된 신동진, 볍씨 퇴출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농정에 묻고 있습니다. 과연 현재 농업 정책이 농민과 소비자의 선택, 그리고 과학 위에서 설계되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면, 이번 기사회생은 잠시 숨을 고른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 관련보도 및 다큐멘터리
"1등인 죄?".. '쌀'아제한 정책에 '신동진 수난'
https://www.jmbc.co.kr/news/view/30511
수확량 많아 퇴출된다는 '신동진'.. "자료 엉터리"
https://www.jmbc.co.kr/news/view/30620
'정부 실험' 부정한 '정부'.. 신동진벼 퇴출 강행
https://www.jmbc.co.kr/news/view/30914
"국회에 제출한 기준도 모호"..신동진 퇴출 논란
https://www.jmbc.co.kr/news/view/31286
전주MBC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신동진 퇴출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