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MBC 자료사진]
정치후원금은 유권자가 정치인에게 보내는 가장 직접적인 신뢰의 표현입니다. 표를 던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 '당신의 정치를 지켜보겠다'는 뜻을 돈으로 전달하는 응원입니다. 그래서 정치후원금은 늘 엄격해야 하고, 투명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취지에 맞게 쓰여야 합니다.
■ "지방의원도 정치후원금".. 시행 1년, 결과는?
지난 2022년 헌법재판소는 지방의원에게도 정치후원회를 허용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치의 문턱을 낮추고, 경제력이 곧 정치력이 되는 구조를 완화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지방의회가 형식적 기관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지방의원도 정책 연구와 주민 소통을 뒷받침할 최소한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 현장에서 확인된 풍경은 그 취지와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전주MBC가 후원회를 설치한 47명의 도내 광역·기초의원 후원회 회계자료 2천 페이지 분량을 전수 분석한 결과, 다수의 후원회에서 정치후원금이 의정활동 지원보다는 사무실 임대료와 인건비 같은 고정비 지출로 빠져나가고, 그 구조가 고착화되는 경향이 확인됐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돈이 적다'거나 '운영이 어렵다'는 하소연이 아닙니다. 시민이 낸 돈이 어떤 구조를 통해, 어떤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 후원금이 '의원님 월세 수입'되는 마법?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지방의원 본인이나 가족이 소유한 건물에 후원회를 설치하고, 정치후원금을 임대료로 받아가는 사례들입니다. 법적으로는 문제없다는 의원들의 해명이 뒤따릅니다. 정치인 개인과 후원회는 법적으로 별개이고,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하면 특혜를 넘어 정치자금법상 '불법 기부'가 될 수 있다는 선관위의 해석이 그 근거입니다.
하지만 시민의 시선에서 보면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한 푼 두 푼 의정활동을 돕자고 낸 돈이, 결국 의원 개인의 임대 수입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과연 용인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의원이 거주하는 아파트나 단독주택, 민간임대아파트를 후원회와 함께 쓰고 있다며, 매달 혹은 반기 단위로 임대료를 받는 사례가 대거 확인됐습니다. 당사자들은 “후원회 사무실을 공짜로 쓰면 안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선관위가 그렇게 안내했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모금액 자체가 많지 않은 후원회일수록, 임대료와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집니다. 대부분이 사무실 유지비로 소진되고, 상당 기간 의원에게 전달된 정치후원금이 ‘0원’인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후원회가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조직인지, 아니면 후원회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인지 묻게 되는 이유입니다. 주객이 뒤바뀐 구조입니다.
■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방의원 정치후원회’?
일부 후원회에서는 의원에게 전달한 정치후원금을 다시 후원회 운영 경비로 되돌려 받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회계책임자에게 지급할 인건비가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역시 회계처리상 가능하다는 해석 아래 이뤄졌지만, 정치후원금이 풀뿌리 정치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고 후원회 안에서만 순환하는 구조라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이 또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례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신뢰를 전제로 한 제도일수록, 법규 준수 여부를 넘어 시민의 눈높이가 더 중요합니다.
사실 구조적 문제는 분명합니다. 국회의원을 기준으로 설계된 틀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채, 지방의원이라는 이름만 덧붙여 시행됐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은 상대적으로 높은 모금 한도(연간 1억 5천만 원)와 인지도를 갖추고 있지만, 지방의원은 모금 한도도 적은 데 후원회 운영 비용을 정치후원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그 결과, 정치후원금은 의정활동을 지원하기도 전에 사무실을 유지하기 위한 돈으로 소모되고 있습니다. 이는 제도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지방의원 정치후원금 제도의 목적은 후원회를 유지하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무실 임대료와 인건비에 보태라고 시민에게 돈을 받자는 것도 아닙니다. 시민이 낸 돈이 정책 연구와 입법 활동, 주민 소통으로 최대한 직결되도록 하자는 데 있습니다.
■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해법
따라서 해법의 방향도 분명합니다. 의원 개인 소유 공간에서 임대료를 주고받는 난센스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정치후원금 지출을 최대한 줄여 그 돈이 고스란히 의원의 정치후원금으로 기능하도록 구조를 재설계해야 합니다. 의원 개인이나 가족 소유 공간을 후원회 사무실로 활용하는 경우에는 임대료 지급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거나, 예외적으로 허용하더라도 엄격한 기준을 두는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치후원금이 정치인의 개인 수익으로 귀결되는 구조를 방치한 채 정치후원금의 투명성과 신뢰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안은 이미 현장에 존재합니다. 후원회 주소지를 전수 분석한 결과, 일부 의원들은 의회내 의원실을 활용해 후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속 지방의회의 협조를 얻었고, 선관위에 해석을 구해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후원회가 반드시 상시 인력을 두고 상주할 필요가 없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형식상·서류상 사무실만 두는 방식으로도 정치후원금 제도는 충분히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충분히 안내되지 않았고, 정치후원금 제도를 설계하는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식은 방치되고, 임대료와 인건비 지출이 발생하는 구조가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습니다. 지방의원으로 확대된 정치후원금이 과연 본래의 기능, 즉 의정활동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재원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잘 쓰고 계십니까?
올해는 지방선거가 열리는 해입니다. 지방의원 후원회의 연간 모금 한도는 한시적으로 2배로 늘어납니다. 광역의원은 최대 1억 원, 기초의원은 6천만 원까지 확대됩니다. 모금 규모가 커지는 만큼, 제도의 허점도 더 크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구조가 유지된다면, ‘의정활동을 위한 후원금’이 아니라 ‘후원회를 운영하기 위한 후원금’이라는 냉소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정치후원금은 정치인의 권리가 아니라 시민의 선택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설명할 책임 역시 정치인의 몫입니다. 후원금 제도를 통해 지방정치가 제 역할을 하길 바란다면, 돈을 보탠 시민의 마음부터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잘 쓰고 계십니까?”
이제 지방의원들과 선관위가 답할 차례입니다.
※ 관련보도
"잘 쓰고 계십니까?".. 지방의원 후원회 전수 조사
https://www.jmbc.co.kr/news/view/60791
의원님 건물 쓰며 후원금으로 월세까지 꼬박꼬박
https://www.jmbc.co.kr/news/view/60838
의원 거주 아파트·단독 주택에 후원회.. 선관위 "월세 꼭 내야"
https://www.jmbc.co.kr/news/view/60837
“사무실 운영비도 빠듯".. 의정 활동 지원은 뒷전
https://www.jmbc.co.kr/news/view/60885
'배보다 배꼽?'.. 줄줄 새는 '지방의원 후원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