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Air
[취재수첩] 낙우송은 어쩌다 '공포의 가로수'가 됐나
2026-05-26 87
조수영기자
  jaws0@naver.com

[전주MBC 자료]

[선명한 화질 : 상단 클릭 > 품질 720p 선택]

전주 도심 한복판의 가로수길,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들이 도로 양옆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가을이면 제법 운치 있는 풍경을 선사합니다. 얼핏 보면 '도시에 이런 녹지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보도블록은 군데군데 솟아 있고, 땅 위로 튀어나온 나무뿌리는 시민들의 발목을 위협합니다. 상인들은 "비만 오면 배수 걱정부터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일부 건물에서는 나무뿌리가 지하 배관 주변까지 파고들어 화장실 역류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이 현장을 촬영하는 동안에도 시민 한 명이 뿌리 때문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발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어느새 '공포의 가로수'가 되어버린 나무. 시민들의 삶을 더 쾌적하게 만들고, 기후위기 시대 도심의 쉼터가 되어야 할 가로수가 오히려 도심의 골칫거리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 1990년대 후반, 도시 개발의 유산


문제의 중심에 선 가로수 이름은 '낙우송'입니다. 떨어지는 잎이 새의 날개 깃털 같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메타세쿼이아와 사촌격인 수종답게 울창하고 이국적인 경관을 자랑합니다. 실제 미국 남부가 원산지입니다. 대부분 1990년대 후반 심어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주 시내 2개 택지지구에 걸쳐 360여 그루가 가로수길의 경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시는 전국 곳곳에서 신도시와 택지지구 개발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전주시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평화지구와 서곡지구 같은 대규모 택지 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습니다.


문제는 조경 역시 '속도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에는 아파트와 도로만 덩그러니 놓인 삭막한 신도시보다는, 단기간에 나무가 우거진 도시처럼 보이는 경관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주시 역시 이런 이유로 당시 조경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속성수'가 선호됐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빨리 자라고, 짧은 시간 안에 그럴듯한 경관을 만들어내는 나무가 선택됐을 거란 뜻입니다.


낙우송은 그런 조건에 잘 맞는 수종이었습니다. 생장 속도가 빠르고 줄기가 반듯한 데다, 몇 년만 지나도 거리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을 정도로 시각적 효과가 큽니다. 그래서 당장 보기에는 꽤 좋은 선택지였는지 모릅니다. 문제는 30년 뒤를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당시 택지 개발을 맡았던 주체는 한국토지주택공사 LH였습니다. 도로와 공원, 가로수 등 기반시설을 조성한 뒤 전주시에 넘기는 '기부채납' 방식으로 사업을 마무리했습니다. 결국 가로수를 심은 주체와, 수십 년 뒤 발생한 문제를 관리·감당해야 하는 주체가 서로 달라진 셈입니다.


심을 때는 미래 비용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난 유지·관리 부담은 고스란히 지자체와 주민들의 몫으로 남게 됐습니다.


[전주MBC 자료]
 

■ '늪지의 나무'를 콘크리트 도시에 심다


낙우송은 원래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강가나 늪지처럼 습기가 많은 환경에서 잘 자랍니다. 물속에서도 숨을 쉬기 위해 뿌리를 땅 위로 솟게 만드는 특성이 있는데, 이른바 ‘기근’, 공기뿌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무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보도블록으로 둘러싸인 도심 한복판에 심었습니다.


숨 막히는 환경 속에서 낙우송은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뿌리는 위로 솟고, 물을 찾아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결국 보도블록이 들뜨고, 도로가 갈라지고, 지하 관로 주변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나무의 잘못이 아닙니다. 낙우송은 원래 자라던 방식대로 자랐을 뿐입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만든 문제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민들은 "민원을 넣은 지 오래됐다"고 말합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넘게 같은 이야기가 반복됐다는 것입니다.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을 때 주민과 상인들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듯 원성을 쏟아냈습니다.


[전주MBC 자료]


'보도블록이 또 들떴다.'

'뿌리 때문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낙엽 때문에 배수구가 막힌다.'

'높이 자란 가로수가 가로등을 가려 우범지대처럼 변했다.'


하지만 전주시의 대응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보도블록을 다시 깔고, 튀어나온 부분을 정비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 같은 문제가 반복됐습니다. 말 그대로 '무한 땜질'입니다.


오랫동안 생활 불편 민원 수준으로 다뤄졌지만, 사실 이 문제는 단순 민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보행 안전과 도시 인프라, 사유재산 피해, 유지관리 예산까지 얽힌 사실상의 도시 구조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대응은 늘 한결 같았습니다. 민원이 반복될 때마다 근본 대책보다는 임시 정비가 우선됐습니다. 시한폭탄의 타이머는 계속 돌아가는데, 경고음만 잠시 끄고 다시 덮어두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최근 전주MBC 보도가 이어진 뒤에야 실태조사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주MBC 자료]


■ '빨리빨리'의 후폭풍.. 시한폭탄은 어떻게?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는 유독 이런 일을 반복해왔습니다. 일단 빨리 짓고, 빨리 개발하고, 빨리 성과를 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수습하는 방식입니다.


1990년대 도시 개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눈앞의 성장과 준공, 외형적 성과가 우선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떤 유지관리 비용이 발생할지, 도시 인프라와 어떻게 충돌할지, 주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상대적으로 뒷순위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늘 미래 세대의 몫이 됩니다.


이번 낙우송 논란도 그렇습니다.


가로수를 심은 한국토지주택공사 LH에는 당시 자료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고, 관리 책임은 기부채납 이후 전주시가 떠안았습니다. 당시 선택의 결과를 30년 뒤 주민들과 현장 공무원들이 감당하게 된 셈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소극 행정은, 또 다른 미래의 시한폭탄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로수는 단순한 도시 장식물이 아닙니다. 도시 온도를 낮추고, 미세먼지를 줄이며,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중요한 생활 인프라입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자라느냐가 아니라, 도시와 얼마나 오래 공존할 수 있느냐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벌목 논쟁이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지, 그리고 반복된 민원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전주시 행정이 답해야 할 때입니다.


전주 도심의 낙우송은 지금도 묵묵히 서 있습니다. 어쩌면 그 나무들은 30년 전 '일단 빨리 만들고 보자'던 도시 개발의 조급함과, '나중에 해결하면 되겠지'라며 미뤄둔 행정의 숙제가 뒤엉켜 터져 나오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