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30년 넘게 덕진공원을 지켜 온 지역 문인들의 동상과 비석들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전주시가 덕진공원을 정비하겠며 법조인에 이어 또다시 문인들의 추모 조형물 등 수십 점을 협의 없이 치워버리면서, 소통 없는 행정이 또 한 번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전재웅 기자입니다.
◀리포트▶
전주 덕진체련공원 옆 외진 주차장 부지,
무언가 새파란 방수포에 덮인 채 끈으로 꽁꽁 묶여 있는데, 채 덮이지 않은 곳에는 동상의 발 모양이 튀어나와 있습니다.
바람에 흩날려 겉으로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비석에는 시인의 업적을 기리는 약력과 시가 적혀 있습니다.
당초 전주 덕진공원에 자리 잡고 있던 문학인 추모 비석들이 웬일인지 인적 드문 산속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강 모 씨 / 전주 송천동]
"보기에 흉측하지, 더군다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인데 이렇게 해 놓으면 보기도 그렇잖아요."
소박하고 평화로운 문체와 일제 저항 의지로 잘 알려진 신석정 선생과 함께 전주와 전북을 대표하는 이철근, 신근 선생을 기리는 시비(詩碑),
1990년대 도민 성금을 모아 덕진공원 한편에 세운 것인데, 올 들어 전주시가 관련 단체나 시민들의 아무런 의견 청취 없이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하면서 이미 반발이 일었습니다.
[김현조 / 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장]
"시민이 내왕할 때 방해가 된다든가 그 동상이 저항감을 갖는가 그런 부분이 아니거든요. 협의를 한다든가, 의견을 타진한다든가 했으면.."
같은 공원에 있던 이른바 법조 3성 동상도 비슷한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전북 출신이자 대한민국 대표 법조인으로 추앙받는 가인 김병로를 비롯해 최대교와 김홍섭 동상을, 옮길 곳도 정하지 않은 채 부직포에 꽁꽁 싸매 주차장에 야적했던 것입니다.
[박용덕 / 전주 덕진동]
"여기 조성 시작하면서 그것부터 치웠어요. 그런데 어디로 대체지를 정했는가? 외진 데다 모시거나 하면 무슨 사표가(모범이) 됩니까?"
전주천의 버드나무 벌목 사건부터, 무분별한 천변 풀 제거까지,
전주시는 그간 대대적인 토목 사업을 벌이며 시민 공간을 바꾸면서도, 이렇다 할 설명 없는 불통 행정으로 수차례 논란을 빚었습니다.
[전주시 관계자]
"(다른 조형물은) 연계성 있는 데로 갔는데, 이런 협의를 못 한 거는 저희도 죄송하다 말씀드렸고, 추후에 협의 중이고요."
그간 덕진공원 정비에만 32억 원을 들인 전주시는 축제와 여가, 관광을 곁들일 열린 광장을 만들어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휴식을 제공하던 푸른 나무 그늘은 사라졌고, 전북 대표 문인과 법조인을 다음 세대에 알려 왔던 시민 공간도 소리 없이 자리를 내어줄 처지에 처했습니다.
MBC뉴스 전재웅입니다.
영상취재: 조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