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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 인골이 널려"..규명 신청 이어져
2021-01-19 622
허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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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당한

민간인들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해달라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고창 지역에서 진실 규명 신청이

줄을 잇고 있는데요.


선산마을 등 곳곳에서 수백 명 규모로

희생 당한 참상에 비해 명예가 회복된 희생자는

극히 일부라는 것인데,


이슈가 있는 현장을 깊이 파헤쳐본

'이슈엔현장' 먼저 70여 년 전 비극을 직접

목격한 유족들의 이야기를 허현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VCR▶

6.25 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들의 폭력에

아버지를 잃었던 이종철 씨는 참혹했던

마을의 모습을 여전히 잊지 못합니다.


야산이며 밭고랑마다 널려 있던 피난민의

유해들이 백골이 되도록 마을 주민들은

수습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INT▶이종철/민간인 희생자 유족

시체가 세 겹으로 쌓여 있었어요. 세 겹, 겹겹이...지금도 (?)다 가면 (희생자) 뼈가 나와요. 풀잎을 걷으면 뼈가 이렇게 큰 게 나와요.


이곳 선산 마을에 군인과 경찰 토벌대가

들이닥친 건 1951년 1월 5일..


이틀 전 이미 전남 장성에서 온 빨치산들이

변산 반도로 빠져나간 뒤였지만,


토벌대는 무고한 피난민 5백여 명을

좌익으로 몰아 마을 저수지 앞으로 끌고 가

무차별 총격을 가했습니다.


◀SYN▶참고인 김철무 진술조서(아나운서)

기관총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일어나라'고 한 후 재차 총을 쏘아 죽였다. 떡메를 들고 다니며 팔딱거리는 사람을 내리쳐 죽이는 것을 보았다.


◀INT▶양완수

동짓달 스무 이렛날이 언제나 선산 마을의

제사여. 무장 장에 아주 제사 물품 사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그랬어.


함박눈이 내리던 1950년 동짓날..


만돌리 해안가도 참혹한 피바다로 변했습니다.


stand-up) 70년 전 이곳 만돌리 해변에는 수십명의 피난민들이 몰렸습니다. 썰물이 들이닥쳐 갈 곳이 없던 피난민들을 향해 군경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댔다는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SYN▶참고인 최OO 진술조서(아나운서)

군경이 몰아치면서 총을 마구 쏘아대 바다로 들어갔다. 바다로 뛰어가는데 옆사람 귀에 총알이 스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옆에서 사람이 탁탁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았다.


고창 선산 마을과 심원.해리면 사건만 따져도 천 명에 가까운 민간인들이 희생됐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하지만 2010년까지 이뤄진 1차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민간인 학살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고창 전 지역을 통틀어 444명에 그칩니다.


10년 만에 2차 조사가 본격화하자,

고창 지역에서는 100명이 넘는 진실 규명

신청이 이어졌습니다.


◀INT▶이옥용/2기 조사 신청 예정

(아버지 사망 장소를) 장숫강으로 (잘못 알고) 신청을 했다가, (알고 봤더니) 하전 앞 까막 바위라고 하는데, 거기서 돌아가셨는데... 거기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고 (1기 때 조사가 안됐다.)


영문도 모른 채 비참하게 가족을 잃었던

아이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지 오래..


다만 희생자 한 사람의 억울함이라도

더 밝혀질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MBC 뉴스, 허현호입니다.


----클러징 이펙트---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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