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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경 공적 뒤에 가려진 비극.."시신도 못 찾아"
2021-01-20 893
허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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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당시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순창 지역은 군경 전사자 유해 발굴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이를 지켜보는 마을 주민들의 속내는 복잡한데,


수차례 토벌이 이어지면서 군경에 의한

민간인들의 희생도 막대했기 때문입니다.


빨치산 토벌의 공적 뒤에 가려진 비극을,

이슈앤현장,허현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VCR▶

군인과 지역 관계자들이 삽으로 일제히

흙을 퍼내고, 분향에 나섭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행사가 축소되기 전까지

육군은 전사자 유해 발굴의 시작을 알리는

개토식을 매년 진행해 왔는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쌍치면 전암리

야산에서 4년 전부터 유해 3구와 유품

천3백여 점을 수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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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토식을 벌였던 행사장 뒤편,

작은 탑 하나가 쓸쓸하게 서 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군경 토벌대에게

희생당한 수백 명의 민간인 피해자들이

모셔진 위령탑입니다.


◀INT▶조휴정/민간인 희생자 유족

우리 부모들 죽인 사람 아닙니까. 따지고 보면... 그분들이 여기 와서 행사처럼, 와서 하고 그러면 안 좋죠. 기분이....


PIP- CG) 빨치산 토벌이 오랜 기간 이어진

순창 지역에서 신원이 확인된 민간인 희생자

129명 중 여성과 어린이, 노인 등은

무려 48퍼센트..//


CG) 군사요원이 될 수도 없는 희생자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학살이 벌어진 건데,


이마저도 일부 신청자에 대한 조사에 그쳐

희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INT▶유병홍/민간인 희생자 유족

(당시 장티푸스가 유행했는데) 병에 걸려서 피난을 못 가면... 할아버지나 할머니 못 가면, 손자들도 보호하기 위해서 같이 남았아요. 그 (집)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지 안 들어있는지 확인도 안 하면서 전부다 불질렀어요.


특히 용전리의 경우 희생자 30여 명이

인근 회문산이나 정읍 내장산 등으로 끌려간 뒤

행방 불명돼 시신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를 잃은 유병홍 씨도 마찬가지,

어디에서 숨졌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기에

막막하기만 합니다.


◀INT▶유병홍/민간인 희생자 유족

(아버지와 함께 있던 사람들을) 몰살시켰다 그러는데, 장소가 어딘지도 모르고,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찾지도 못하고 막막하게 있어요.


순창 지역 민간인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예산은 제사비 수백만 원 수준..


군경 전사자에 대한 예우 흐름과는 달리

제주 4.3사건 등 대규모 희생 사건을

제외하고는 유해 발굴을 위한 기초 조사도

쉽지 않습니다.


◀SYN▶순창군 관계자

(구림면의 경우) 그런 추모제를 자체적으로 청년회에서 추진을 하고 있었나 봐요. 재정적으로 어려우니까 (쌍치면 등) 면 2곳만 그런 식으로 해서 예산 지원을 받으면서 행사 이런 것을 하고 있고....


전북경찰청 앞에 세워진 또 다른 비석..


빨치산 토벌에 공을 세운 차일혁 경무관과

18전투경찰대대를 기리는 이름비입니다.


고창 월림 마을에서 민간인 89명 학살을

승인하고, 이를 수행한 전력이 드러나

최근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SYN▶경찰 관계자

과거사 진상(조사) 위원회에서 하는 것이니까 (사실일 텐데, 앞으로는) 당연히 이제 해봐야겠죠. 다른 기관이나 비슷한 기관에 조회도 해봐야 하고, 하여튼 그런 부분을 신경 써서 해야 되지 않을까....


빨치산 토벌의 공적 뒤에 가려진 민간인

학살의 아픈 역사..


군경들도 다 같은 전쟁의 희생자라고 여기고

있는 유족들은 다만 피해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희생당했는지만이라도 밝혀 달라고 호소합니다.


MBC 뉴스, 허현호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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